2021-12-05 일요일

[정치와 전략] 선진국은 유권자의 표가 만든다

김진항/칼럼니스트 겸 전략이론가

등록 2021-10-15 18: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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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웃기는 사건은 미국 해군이 너를 데려간 일이다. 세상에 멀쩡한 놈이 쌔고 쌨는데 어쩌자고 해군은 너 같은 놈을…." 1941년 가을 어느 하버드 법과대학원 학생은 친구가 군대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편지를 띄웠다.

사실 그 친구는 척추부터 창자까지 성한 데가 없었다. 그해 육군 장교 후보생 시험, 해군장교 후보생 시험에서 잇따라 쓴맛을 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친구는 억만장자 아버지에게 애절한 편지를 썼고, 아버지는 정계와 군의 인맥을 움직여 아들을 해군에 집어넣었다.

아버지와 아들을 묶어준 끈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국민 대열에서 낙오하게 되면 장래 나라의 주요 공직을 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박감이었다.

이렇게 해군에 들어가 훗날 남태평양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그는 평생 진통제와 각성제의 힘을 번갈아 빌려가며 통증에 맞서야 했다. 케네디 대통령 이야기다. 시사 만화가들은 미국의 6·25 참전 결정을 내린 트루먼 대통령을 그릴 때면 코에 걸린 두툼한 안경부터 먼저 그려 넣었다.

트루먼은 안경이 없으면 장님과 마찬가지인 지독한 근시였다. 그런 그가 1차 세계대전 당시 포병 대위로 프랑스 전선을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시력검사표를 달달 외워서 신체검사를 통과한 덕분이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1916년 6월 영국군은 프랑스 북부 솜강지역 전투에 25개 사단을 투입했다. 돌격 명령과 함께 영국 젊은 병사들은 40㎏ 가까운 군장을 짊어지고 독일군 기관총 총구를 향해 온몸을 드러낸 채 진흙탕을 달려 나갔다.

소대와 분대의 앞장을 선 것은 귀족 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젊은 소위들이었다. 전투 첫날 7만 여명의 영국군이 전사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50년대 차례로 영국 총리를 지낸 애트리·이든·맥밀런은 지옥과 같은 이런 전투의 생존자들이었다.

세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대학에 복학했으나 함께 전쟁에 나갔던 학우의 3분의 1은 끝내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50세 이하 영국 귀족의 20%가 1차 대전에서 전사했다. 귀족과 명문대학 출신의 전사자 비율은 노동자·농민보다 몇 배 높았다.

왜 선진국 사람들은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아니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위험한 곳에 스스로 몸을 던져 달려가는 것일까? 자격 미달인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고 기필코 그 위험한 곳에 자원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전 상태에서 군에 안 가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멀쩡한 자신의 몸을 훼손하면서 군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가치관의 차이다.

선진국의 가치관은 건전하고 향기로운 가치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치관은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악취 나는 가치관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지 정신이 없어서다.

정치란 남을 위한 봉사인데 그것을 자신의 사리를 채우는 도구로 생각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 권리만을 찾아다니는 파렴치한이다.

그것은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안락을 추구한다. 서양 사람들이라고 해서, 선진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 위험한 곳에 가지 못해서 안달인가? 그것은 사회적 분위기가 국가를 위해서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거나 헌신하지 않은 사람이 공직을 맡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직을 맡고 싶은 사람은 많은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 후일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에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다. 음양의 법칙에도 맞다. 위험한 곳에서 봉사한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아 국가의 중책을 맡아 국가를 위해 일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일을 해야 국가를 위한 일을 할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회피한 사람이 국가의 중책을 맡는다면 그 나라는 정말 불행하다.

나랏일을 하는 중에 항상 자신의 일을 먼저 챙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GDP가 올라도, 세계적 회의를 아무리 많이 개최해도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돈이 많으면 천박한 졸부 나라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가 헐뜯고 싸우고, 속이고 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사회적 기회비용이 늘어나서 그 부 마저도 그리 오래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여!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유 민주국가에서 이런 문제는 유권자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면 된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 표를 주지 않으면 해결된다. 그렇지 못하고 사사로운 감정에서 선동에 휘말려 파렴치한 자에게 투표한다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나를 옥죌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까지 질곡에서 허덕대야 할 것이다. 대선이 불과 넉달 반 남짓 남았다. 고민해야 한다.

※이곳에 게재되는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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