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⑧

임해정 기자 등록 2021-06-23 13:55:16
center
[농업경제신문=임해정 기자]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가고, 모기의 입도 비뚤어진다고 전해온다. 그런데 갑신년 중추 격포진 죽막동 숲모기들의 입은 바로 붙었다. 몸집이 커서 그런지 입도 크고, 갯바람에 시달려선지 입놀림도 야물다.

그런 입에 잔뜩 힘을 모으고 달려드는 숲모기떼에 두 사람은 손 쓸 겨를이 없다. 피에 굶주린 암컷 숲모기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어 입술침을 쑤셔 박은 자리마다 금세 벌겋게 탱탱 부풀었다. 숲모기들은 두 사람의 얼굴과 팔뚝에 난 생채기에도 입술침을 꽂는다.

시누대 대숲에 숨었던 먹파리도 달려든다. 암컷 숲모기처럼 암컷 먹파리도 두 사람의 몸에 난 생채기는 물론 성한 살갗에도 주둥이를 들이대고 피를 빨아댄다.

두 사람은 이런 물것들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손을 써서 때려 잡거나 쫓을 수도 없다. 손에 든 비수를 휘둘러 모기 대가리에 든 골을 빼낼 짬도 없다. 멀리서 들리는 개짖는 소리가 더욱 커졌기에 시누대 대숲에 숨어드는 일이 다급해서다.

갑작스러운 고양이 울음소리에 넋이 빠진 들쥐가 쥐구멍인들, 뱀굴인들 가릴까. 앙얼과 주뱅도 그런 꼴이다. 큰 봉변을 당하기 전에 시누대 대숲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기는 일이 상책이다.

두 사람이 종종걸음을 멈춘 곳은 수성당 가는 오솔길에서 서른 걸음쯤 떨어진 여울굴 쪽 대숲이다. 너머에 깎아지른 칠십 척 적벽이 서 있는 여울굴 벼랑끝 대숲 언저리에 두 사람은 털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쉰다. 갯바람에 우는 대숲의 울음소리 탓인지, 여울굴에 들락거리는, 적벽강 적벽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탓인지, 두 사람의 귀엔 개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위도 너머 수평선 뒤편으로 석양은 뚝 떨어졌다. 그렇지만 칠산바다를 이불처럼 덮고 있는 하늘은 마지막 노을을 붙잡고 있다. 담배 한 모금 피울 참이면 땅과 바다에 어둠이 깔릴 터라 어둑한 하늘이 붙잡아 둔 마지막 노을은 시뻘겋기 그지없다.

위도 상공에 남은 시뻘건 노을이 순식간에 사라진 뒤, 앙얼이 입을 열었다. 턱 끝에 난 생채기에 달라붙은 먹파리를 손바닥으로 때려잡으려다 놓친 뒤라 그런지 눈꼬리는 심하게 찌그러졌다.

“작년 춘삼월 비안도서 세곡선 털다 뒈졌다는 겍포파 막둥이 새끼한티 들은 야근디, 한 번 들어볼쳐?”

주뱅은 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몸뚱이 이곳저곳을 긁느라 정신이 없다. 대숲 안쪽과 달리 갯바람이 세찬 갯가여서 숲모기와 먹파리가 달려드는 횟수는 크게 줄었지만 피에 굶주진 물것들이 뭉뚱이에 남긴 가려움증이 쉽게 가시지 않는 탓이다.

주뱅처럼 몸뚱이 이곳저곳을 긁어대며 앙얼은 몇 년 전 격포파 막둥이한테 들었다는 죽막동 ‘철마(鐵馬)전설’의 골갱이를 이렇게 풀어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죽막동엔 마음씨 고운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은 칠산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았고, 동생은 죽막동의 밭을 일구며 농사를 지었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형제의 우애는 두터웠다.

형제는 나이 드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 형제는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형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작은 고깃배를 타고 나갔는데, 날이 저물도록 귀항하지 않았다.

동생은 밤새도록 형이 타고 나간 고깃배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다음날 동이 터도 고깃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은 배를 타고 형을 찾으러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동생이 타고 나간 배도 귀항하지 않았다.

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는 두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어 애가 탔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울다 지친 어머니는 급기야 집을 나섰다. 앞도 보지 못하는 어머니가 한참 동안 더듬더듬 걸어가서 걸음을 멈춘 곳은 수성당 옆 여울굴 벼랑끝이었다.

어머니는 벼랑끝에 서서 두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불렀건만 대답이 없었다.

그러던 중인데, 어머니의 귀에 대답이 들렸다. 그래 어머니는 두 아들이 살아서 돌아온 줄 알고 기쁜 마음에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실 어머니가 귀로 들은 소리는 두 아들의 대답이 아니었다. 벼랑끝 너머 깊은 여울굴에서 메아리로 되돌아 나온 자신의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그 메아리가 귀항한 두 아들의 목소리인 줄 알고 한 발 한 발 앞으도 내딛었던 것이다. 그러다 그만 어머니는 여울굴 칠십 척 적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계속)

임해정 기자 emae9031@thekpm.com
<저작권자 © 농업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HEADLINE NEWS

Editor's Pick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