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⑤

임해정 기자 등록 2021-05-04 15: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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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따 그 새끼, 말귈 못알어 듣네 그랴. 쩌그 수우 수성당 하알 할매가 개에 개양할매랑께 그라네!”

이렇게 대답한 앙얼의 몸둥아리가 뻣뻣하게 굳는다. 엄동설한 꽁꽁 얼어붙은 동태꼴이다.

그런 앙얼을 째려보던 주뱅이 “카악! 카악!” 가래침을 돋워 “퉤!” 뱉는 뒤, 애꾸눈을 사납게 굴린다. 개소리 치지 말라는 눈빛이다.

“이런 학십읎는 놈이 있나! 수성할매가 워찌기 개양할매냐고?”

주뱅이 앙얼을 배운 것도 없고, 상식도 없는 놈이라고 개무시한다. 그러자 앙얼의 움푹 팬 눈에 핏발이 뻗친다.

“비이 빙신 다알 달밤에 체에 체조헌다뎅 시이 시방 이 새끼가 꼬오옥 그으 그짝이고만!”

앙얼의 입에서 ‘병신’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주뱅의 외눈깔이 뒤집힌다. 그의 오른손엔 날카로운 비수가 쥐어졌다. 어느새 여름 홑바지 뒷괴춤에서 꺼낸 모양이다.

“앙얼이 너 시방 무시라 혔남?”

이미 진홍빛 노을이 물들어 온통 핏빛인 주뱅의 뒤집힌 눈에도 핏발이 섰다.

“빙신 달밤으 체조헌다고야?”

외눈깔에 가득한 핏빛이 흘러내린 듯 주뱅이 오른손에 꼬나잡은 비수도 시뻘겋게 뵌다.

“비이 빙신 유우 육갑허고 자아 자빠졌네 새끼!”

앙얼의 입에서 다시 또 ‘병신’이라는 말이 삐져나오자 주뱅은 온몸을 부르르 떤다. 손아귀의 비수가 어느새 봉두난발 위 허공으로 올라갔다.

“아나 어여 따라!”

앙얼이 봉두난발의 머리채를 왼고개로 틀고 잔뜩 움추렸던 자라목을 길게 빼 주뱅의 턱 밑에 들이댄다. 네 손에 든 비수로 얼른 돼지 멱 따듯 내 멱을 따라는 시늉이다.

“으따 묻허냐 새꺄! 언능 요 모가지 꽉 따번지랑께!”

주뱅이 오른손에 든 비수를 머리 위로 올린 뒤로 앙얼은 더 이상 말을 떠듬거리지 않는다. 태도도 앙칼지다.

칼침자국이 처연한 앙얼의 관자놀이에, 세찬 갯바람을 따라 살쩍머리가 여남은 번 흩날릴 때 쯤, 허공에 떠 있던 주뱅의 오른손이 허리춤 아래로 내려왔다.

“빙신 육갑 다 끝났댜?”

앙얼이 봉두난발의 머리채를 바로 세우며 묻는다.

“아니 이 새끼가 오늘 깨팔러가고 자퍼서 환장을 혔남?”

주뱅이 허리춤 위로 오른손을 순식간에 올리더니 앙얼의 목에 비수를 들이댄다.

“야 이 새꺄, 너 참말로 뒈지고 자퍼서 환장을 혔냐, 엉?”

주뱅이 울부짖으며 위협한다. 외눈깔에서 핏빛 물든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이 호로 상놈으 새끼야! 나아 나가 워쩌다 눈 비잉 빙신이 돼얐는지 누우 누구보담 잘 아는 새끼가 끄칫허믄 비이 빙신 빙신 해쌌는디, 오늘은 참말로 눈 딱 감고 요 모가지 꽉 쑤우 쑤셔불꺼나?”

“지발 부탁이다. 후딱 쑤셔부러라! 에미 애비도 읎고 처자식도 읎는 나, 이 풍진 시상 고만 하직허고 자픈께 싸그 돼야지 모가지 따득기 확 따벤지라고!”

서슬이 시뻘건 비수가 목에 닿았는데도 앙얼은 태연하다. 외려 목청이 더 올라간다.

“빙신 육갑허덜 말고 언능 쑤시라고 새꺄! 접때 너 왕포서 뱃놈 하나 칼질혀서 모가지 따득기 말여!”

대찬 대거리를 하고 있지만 꼭 감긴 앙얼의 눈꼬리에서도 핏빛 물든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눈물을 보고 주뱅은 앙얼의 목에 대고 있던 비수를 떨군다. 다시 목젖으로 힘겹게 가래침을 긁어모아 시누대 대숲에 “퉤!” 뱉는다. 한 발 거리도 안 되는 시누대 댓잎에 떨어진 가래침도 핏빛이 감돈다. 노을이 스민 탓이다.

“아까 너, 수성할맬 워쪄서 개양할매라 불르냐고 물었지야?”

주뱅은 얼김에 꺼내든 비수를 여름 홑바지 뒷괴춤에 집어넣으며 말이 없다.

“나도 니놈 맨치로 낫 놓고 기윽자도 몰리는 눈 뜬 봉사라 아는 것이 묻 있것냐마는 그리도 귀머거린 아니라 에러서부텀 여그저그서 줏어들은 풍월을 이렇기 저렇기 짜맞춰감서 목숨은 부지허고 사는 재주가 있다봉께 시상 물정을 너 보다 쪼까 더 안다고 생각허는디, 너 작년 끄르끄 법성포 목냉기서 해적질 허다가 칼부림 났을 적으 맞빡에 피도 안 말린 에린놈이 베짱 좋기 나서가꼬 나헌디 맞짱 한 번 뜨자고 덤볐던 일 기억나남?” (계속)

임해정 기자 emae9031@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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