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②

임해정 기자 등록 2021-03-22 10: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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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홍성모 작가
[농업경제신문=임해정 기자]


칠산골의 서 씨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단다. 그 시점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과 사람이 서로 너나들이로 어울려 살던 시절의 얘기리라.

하늘의 신과 땅의 사람이 허물없이 지내던 시절, 칠산바다 북쪽 끄트머리엔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던 여성 해신(海神)이 살고 있었다. 격포진(格浦鎭) 여울굴에 살았던 그 해신의 이름은 개양할미다. 때로는 수성(水聖)할미라 불린다. 이 여성 해신이 칠산바다의 창조신이자 수호신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뜨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엔 일곱 개의 별이 박혀 있다. 일곱 개의 별에 순서를 붙여 부르는 명칭은 천추(天樞), 천선(天璇), 천기(天璣), 천권(天權), 옥형(玉衡), 개양(開陽), 요광(搖光)이다. 개양(開陽)은 북두칠성의 여섯 번째에 해당 되는 별이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이 가장 눈부시고, 가장 멋지게 보이는 날이 있다. 음력 7월 7일 칠석(七夕)이다. 한여름 칠석날 밤하늘에 뜬 북두칠성은 연중 가장 또렷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 얘기가 깃들어 그 운치가 남다르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이른 새벽에 길어 올린 정화수로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밤을 지새우고 난 우물 안의 깨끗한 물을 떠서 사발에 담아 장독 위에 올려놓고 하늘을 향해 빌었다. 집안의 평안과 가족들의 건강이나 성공도 빌었다. 정성스럽게 정화수를 떠서 장독 위에 올려놓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대개 한 집안의 어머니나 할머니였다.

이른 새벽, 한 집안의 나이 든 아녀자가 올리는 정화수 기도는 주로 하늘의 북두칠성을 향한 것이었다. 우리 민족은 북두칠성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로 여겼다. 붙박이 별인 북극성을 감싸 안고 도는 북두칠성은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의 길라잡이 역할도 한다.

북두칠성의 여섯 번째 별 개양. 칠산바다에 떠 있는 섬이나 인근의 육지에 탯자리를 둔 사람들은 개양을 할미라 불렀다. 아직 노년에 이르지 않은 중년의 여성 해신을 할미라 칭한 데는 마고(麻姑)할미의 영향도 없지 않다.

한민족의 설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마고할미는 세상을 창조한 여신(女神)이다. 창조의 여신 마고할미는 ‘대모신(大母神)’이다. ‘대모’는 ‘큰 어머니’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이 ‘큰 어머니’ 같은 여신으로 여겨 온 마고할미 역시 늙은 할머니가 아니었다. 바닷속의 흙을 삽으로 떠서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설문대 할망처럼 키가 크고 힘이 아주 센 젊은 여성신이다.

창조의 여신이자 거인 같이 큰 여신 마고할미가 치마폭에 싸서 나른 흙이 이 땅의 산이 되고 섬이 되었다. 마고할미의 오줌과 똥은 산이 되기도 하고, 개천이나 강이 되기도 했다.

마고할미는 삼실로 짠 천인 마포(麻布) 구만 필로 옷을 지어 입어도 몸을 다 감싸지 못할 정도로 몸집이 컸다. 키가 얼마나 컸던지 깊은 바다를 걸어 다녀도 바닷물이 무릎에 닿지 않았다.

힘도 장사였다. 삼천리 금수강산의 무수히 많은 마을의 큰 돌은 마고할미가 손이나 채찍으로 던져서 박힌 것이다. 육지의 높다란 두 산봉우리에 두 다리를 걸치고 오줌을 누면 오줌발이 어찌나 센지 높은 고개의 큰 바위가 깨져 박살났다.

격포진 여울굴에 살았다는 개양할미 역시 그렇게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신이었다. 개양할미는 굽 달린 나막신을 신고 바다를 걸어 다니며 수심을 재 깊은 바다는 흙이나 돌고 메꿨다.

어느 날엔가 개양할미가 보안현 검모포(黔毛浦)에 들렀단다. 검모포 앞바다엔 계란여가 있는데, 어찌나 깊었던지 굽 달린 나막신을 신은 개양할미의 치맛자락이 그만 바닷물에 젖고 말았다. 잔뜩 화가 난 개양할미는 검모포 육지의 산에다 바닷물이 묻은 발을 내디뎠다. 치마폭에 산의 흙을 퍼담았다. 수심이 깊은 계란여를 메꾸어 버렸다.

이런 전설이 있어 갑신년 음력 8월 17일까지도 칠산바다의 어부들은 수심이 깊은 곳을 “검모포 둠벙 속 같다”고 말한다.

사자바위 형상의 기암괴석이 있는 격포진 여울굴에 지상의 터를 잡고 살았던 개양할미는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다. 그 여덟 명의 딸과 함께 개양할미는 바다의 파도를 다스려 칠산바다를 왕래하는 선박을 보호하고, 어부들의 안전과 고기잡이의 풍어도 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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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정 기자 emae9031@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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