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 땅이 울면 사람은 울부짖게 마련이다. 하늘 아래 땅이 울고, 땅 위의 사람이 울부짖으면 바다는 어쩔거나. 바다인들 어찌 피와 눈물을 흘리지 않으랴.
서기 1884년 갑신년(甲申年). 그 해는 단기(檀紀) 4217년이었다. 조선왕조의 제26대 왕인 고종이 21년째 집권하던 해였다.
그해 가을인 음력 10월 17일,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났다.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가 우정국(郵征局) 즉, 우편이나 전신 따위의 통신을 맡던 관아의 완공을 축하하는 행사장에서 일으킨 정치적 사건이었다.
갑신정변은 실패했다. 청나라가 개입해 삼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이후, 정변을 이끌었던 개화파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인 갑신년 음력 8월 17일. 중추절인 추석 명절 다다음 날이다. 이날 밤, 하늘에서는 월식(月蝕)이 일어났다. 밤하늘에 뜬 달을 개가 베어먹는다는 월식이 보름날도 아닌 열이렛날 들었다.
음력 열이렛날 뜨는 달은 칠망(七望)이다. 보름을 넘어서 시커먼 밤하늘에 뜬 칠망의 크기와 낯빛은 보름달과 어금버금하다. 하지만 그 열이렛날 둥근달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가슴은 보름날과 사뭇 다르다.

갑신년 중추 칠망이 뜬 칠산바다(七山海). 전남 영광군 앞바다에 떠 있는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 등 일곱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칠 뫼다. 이 칠 뫼가 발목을 담근 서해를 칠산바다라 부른다.
칠산바다는 영광 굴비의 주산지이자, 조기 파시(波市)의 본디 중심지다. 일곱 개의 섬이 있으니 칠섬바다라 부르는 것이 이치에 맞으련만, 예로부터 칠산바다라 불렀다. 그 내력은 특별한 전설 때문이다.
원래 칠산바다는 땅이었단다. 일곱 골엔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터를 잡고 있었다. 한 마을엔 마음씨 좋은 서 씨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서 씨 노인의 집에 들렀다. 서 씨 노인은 생면부지의 그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했다.
“어르신,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대접을 잘 받았소이다.”
서 씨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초가삼간을 떠나며 나그네가 한 말이다.
“으따, 사람 민망시럽게 어쩌그러시오. 사는 꼬라지가 변변치 않어 밥상에 올린 반찬도 부실허고, 빈대 톡톡 튀는 오두막에서 하룻밤 새우잠을 주무시느라고 참 애를 먹었을 텐디, 지발 낯짝 뜨겁기 이러들 마시고 싸그 갈 길을 가셨으면 좋것고만이라우!”
서 씨 노인이 이렇게 말하며 나그네의 등을 울 밖으로 떠밀었다.
“저기 어르신!”
“으따 또 무신 염치없는 말씸을 허실라고 그러쇼?”
“이 칠산골이 말이오. 머지않아 바다가 될 터이니, 하루라도 빨리 이 마을을 떠나시는 게 좋을 성 싶소이다.”
“무시 어쩌고 어쩌라우? 이 이 칠산골이 머어 머지않아 바다가 된다고라우?”
“그렇소이다.”
“언지쯤 바다가 되는디요?”
“저기 저 마을 뒷산 밑 돌부처가 말이오, 귀에서 피를 흘릴 때 이 칠산골은 바다가 될 것이오.”
나그네는 이런 말을 남기고 마을을 떠났다. 이후, 서씨 노인은 매일 아침 산밑에 찾아가서 돌부처의 귀에서 피가 나오는지 살폈다.
서 씨 노인이 나그네가 남기고 간 예언을 얘기하며 매일 아침이면 산밑 돌부처의 귀를 살피자 마을 사람들은 서 씨 노인을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개를 잡고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백정이 산밑 돌부처를 찾아갔다. 백정은 돌부처의 귀에 손에 묻은 개의 피를 발랐다. 마을 사람 그 누구도 모르게 말이다.
이튿날 서 씨 노인은 돌부처의 귀에 묻은 피를 보았다. 부리나케 마을로 내려와서 소리쳤다.
“으따, 일 났네 일났어! 산밑 돌부처가 피를 흘렸으니 인자 이 칠산골이 바다가 되게 생겼고만 그려! 얼렁들 처자식 뎃고 마을 뒷산으로 피신을 혀야 쓰것고만!…”
서 씨 노인은 마을 고샅을 돌며 이렇게 외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이 서 씨 노인의 말을 들었는데, 그 사람은 공교롭게도 그날 마을에 들른 소금장수였다.
소금장수는 소금지게를 지고 서 씨 노인을 따라 마을 뒷산으로 올랐다. 한참 뒤, 천둥과 번개가 쳤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바닷물이 밀려들더니 순식간에 마을을 집어삼켰다. 마을 뒷산 꼭데기까지 차오른 바닷물은 소금장수가 소금지게를 받쳐 둔 작대기 밑에서 잠잠해졌다. 서씨 노인과 소금장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둘러보니, 칠산골의 일곱 산봉우리는 바다에 둥둥 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