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산 우유 빗장 풀리나…소비기한 논란

유경석 기자 등록 2020-11-09 11:18:56
  • 식약처, 연내 식품 유통기한→소비기한 변경 추진
    우유 판매 9~14일→50일 연장…수입산 시장잠식 우려
    식약처·여당·식품업계·학계·언론 등 대대적 공세
    식약처 등 “식품폐기물 감소” vs 낙농업계 “식품안전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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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내 낙농업은 국산원유자급률 하락과 수입 원유 증가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2026년 한미FTA가 발효되면 가격경쟁력 상실로 붕괴 위기마저 우려된다. 농업경제신문은 이에 따라 유제품 유통의 특성과 함께, 낙농업 위기와 대책을 진단한다. 〔편집자 註〕

① 수입산 우유 빗장 풀리나…소비기한 논란
② 우유소비 증가 낙농업 위기…수입물량 ↑
③ 내년 치즈 무관세 수입…원가상승 대책없는 정부
④ FTA 피해액 수십억?…낙농업계 생존은 '적극행정'
⑤ 김승남 의원 "외국 낙농업자 혈세 지원...개선 앞장"

식품 '유통기한'이 연내 '소비기한'으로 변경될 전망이다. 판매자중심인 유통기한(Sell-by date)을 소비자중심인 소비기한(Use-by date)으로 개선한다는 정부 입장과 달리, 낙농업계는 생존권 투쟁 중이다.

현재 우유, 즉 백색시유의 유통기한은 냉장 보관기준 9~14일로, 소비기한 도입 시 최대 50일까지 연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수입산 유제품이 대거 유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호주, 유럽 등 낙농국가에서 해상운송 시 한 달 가량 소요된다.

소비기한 표시제가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주장은 명분일 뿐 우유수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정부는 토론회와 간담회를 통해 식품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논의한 후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식품표시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세(勢)대결에서 낙농업계가 한참 밀리는 형국이다.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 한국식품산업협회 등 식품업계, 한국소비자연맹, 학계, 언론 등이 가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식품표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에 반해 한국낙농육우협회,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 등 낙농업계 홀로 '신선도'를 내세우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유통기한이 짧은 우유에 소비기한이 적용될 경우 변질사고로 소비자 안전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이다. 소비기한은 ‘표시된 보관조건에서 소비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말한다. 유통기한은 제조업자와 유통업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데 비해 소비기한은 소비자 책임이 더 강조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현행 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 포장식품의 일자 표시제도는 제조일자, 포장일자, 유통기한, 품질유지기한, 소비기한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유통기한과 품질유지기한 중심으로, 영국과 일본 등은 소비기한과 품질유지기한 중심으로 표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기한 도입 시 소비자 혼란을 방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간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인식해 버려지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표시된 보관조건이 충족될 경우 유통기한이 지났더라도 우유 50일, 크림빵 2일, 냉동만두 25일, 계란 25일, 식빵 20일, 생면 9일, 액상커피 30일, 슬라이스 치즈 70일 등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오랜 기간 식품을 소비할 수 있어 식품 폐기량이 줄 것이란 기대다.

여기에 영국을 비롯해 EU, 일본, 호주, 미국 등이 소비기한을 사용중인 점도 강조하고 있다. 특히 2018년 7월 CODEX가 유통기한 식품 표시규정을 삭제했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강병원 의원은 "유통기한이 도입된 1985년에 비해 식품 제조기술 발달, 냉장유통 체계 등 환경이 개선됐지만 유통기한 표시제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소비자 혼란을 방지하고, 식품의 안전을 담보하면서 식품폐기물 감소가 가능하도록 소비자 중심의 소비기한 표시제로 개선해 식품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것"이라며 식품표시법 개정안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상태다. 국내 유통매장은 대부분 오픈 쇼케이스 내지는 이동식 냉장 쇼케이스에 우유를 진열·판매한다. 냉매와 거리에 따라서 제품 표면온도마다 차이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GAP (농산물우수관리)·GMP(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등 식품안전이 관리되는 생산과정과 달리 유통과정에서 변질사고의 위험은 여전히 높은 셈이다.

소비기한은 ‘표시된 보관조건’이 보장돼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유통과정은 법적 냉장온도(0~10℃)가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소비기한 도입에 앞서 유통과정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올해 소비자연맹 조사결과를 보면 국내 유통매장의 법적 냉장온도(0~10℃) 준수율은 70~80%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오픈 쇼케이스에 진열된 우유의 경우 유통매장 자체 설정온도와 진열대 내 냉장식품의 표면온도 간 차이가 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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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종류별 권장유통기한. 자료=식품의약품안전처
미국 USDA(농무부.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에 따르면 식중독을 일으키는 원인균인 리스테리아균의 경우 현행 냉장온도 규정인 10℃에서도 빠르게 증식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냉장온도가 높은 경우 식품의 변질 또는 부패로 식품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특히 우유의 경우 단백질, 유당, 칼슘 등 100여 종의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 미생물에 의한 오염이 잘 일어나는 까닭에 세심한 유통관리가 요구된다.

식약처는 이에 대해 우선 법부터 개정한 후 유예기간을 통해 냉장여건 등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낙농업계는 소비자안전을 고려해 '先 여건조성, 後 법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소비기한은 '표시된 보관조건'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으로 국산 우유의 변질사고가 발생해 소비자 불안이 커질 경우 수입 유제품에 의존하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입 유제품의 경우 멸균유를 물에 희석한 것으로, 국내 낙농가에서 생산한 우유 즉 백색시유와 달리 장기유통이 가능하다.

식품표시법 개정에 앞서 유통실태를 철저히 점검하고, 냉장고 노후를 비롯 영업 시 개방 여부, 온도센서 위치, 주기적인 온도 검·교정 등 세심한 대책이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소비기한을 시행중인 EU의 경우 매년 8800만톤, 약 202조원(1690억 달러)의 식품폐기물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소비기한은 부패가 용이한 7일 미만의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에만 선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면서 "식약처와 여당은 소비자안전에 방점을 찍고 사전 여건조성과 함께 식품 표시일자 제도 개선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또 다른 낙농업계 관계자는 "국내산 우유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소비가 감소하는 반면 멸균유 등 유제품 수입은 늘어 국내 낙농기반은 붕괴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며 "FTA체결로 국산우유자급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소비기한 도입은 유가공품 수출국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이원택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북 김제·부안)에 따르면 국산(원유)우유자급률은 2009년 69.5%에서 2019년 48.5%로 10년간 21.0%가 하락했다.

반면 원유 소비량은 2009년 303만6455톤에서 2019년 422만7625톤으로 119만1170톤(39.2%)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원유 수입량은 95만9125톤에서 230만3965톤으로 133만4840톤(140.2%)이 늘었다. 이는 늘어난 국내원유소비량 대부분을 수입산이 차지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유경석 기자 kangsan06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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